고등학교 때 등교길에 횡단보도 위에서 끊긴 실반지같이 남은 해를 맨 눈으로 본 이후(태양이 거의 가려지면 맨 눈으로 봐도 눈부시지 않았다.) 처음 보는 개기일식. 급히 방을 뒤져 흑백필름 끄트머리를 들고 고추, 상추 화분 즐비한 옥상에 쭈그리고 앉아 해와 달을 봤다. "아! 우주다!"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쯤은 술을 마시고 부리는 주사가 있다. 파인애플 맛 탄산 쥬스 같았던 돌아가시기 직전의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할아버지는 2006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벌써 3년이나 된 일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파주집 거실에 걸려있는 도포입은 할아버지들의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 속에 이제 살아계신 분은 고작 두어분이다. 할아버지는 사진 속의 사람들의 세계로 이사하신 것 같았다.
당시 노느라 병환 중인 할아버지를 자주 뵙지도 못했는데, 돌아가시기 2주 전에 휴가를 내서 잠시 들렀던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황달에 걸려 형광 노란색이 된 모습 그대로 눈을 감으셨는데, 입관 때 눈을 감은 할아버지의 얼굴에 눈꺼풀의 떨림이라든가, 솜털 조차 미동하지 않고 모든 게 얼어버린 모습을 보니 와락 슬픔이 몰려왔다. '숨을 거둔다'는 표현의 의미는 사람에게서 파르르한 떨림이 거두어진다는 것이었다.
18살에 가마타고 말타고 시집 장가 들어,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함께 겪으며 평생을 보낸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입관식에서 이마를 맞대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술 먹는 거 구박하며 속이 다 문드러질거다고 욕했드만, 진짜 속이 썩어 문드러져 죽을 줄 어찌 알았누라고 우시던 장면이 생각이 난다. 죽음이라는 것은 일대기 속에서 애정과 증오의 모든 거리 속에서 죽은 자를 부여잡게 되는 사건이다.
장례식 동안 할아버지를 저승으로 보내는 여러번의 제를 올린다. 아침, 점심, 저녁에 올리는 제마다 죽은 이에게는 저승길의 어디쯤 가야 하는지, 산 사람에게는 그가 어드메쯤에 있는지 알려주는 말을 한다. 그 때마다 나는 할아버지의 여행길을 상상하며 울고 또 울었다.
화요일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삼우제까지 끝내고 진이 빠진 식구들이 일요일 하루를 쉬고 월요일에 모두 일상으로 복귀했다.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다고 했지만, 살아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그 육체의 사라짐을 실감하기 위해서, 또 익숙해지기 위해서,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무척 헤멨다. 즐겁지만 생각하면 속이 아련해지는 좋은 추억들이 있지만, 그것은 모두 사라진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다시는 살아서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수 나는 꿈을 꿨다. 하얀 모시 옷을 위아래 시원하게 갖춰 입은 할아버지는 뽀얀 얼굴로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이름 모를 할아버지들과 낮술을 거하게 걸치고 계셨다. 나는 여기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으니 내 걱정은 말아라, 할애비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지금 내 오랜 사람들과 만나서 더없이 즐겁다.
나는 울다가 시원하게 잠에서 깼다. 죽은 사람들이 가는 자리가 있다면, 산사람으로서 나는 그가 그 저승길을 제대로 걸어가셨을지 늘 염려가 되었다. 그리고 저승이란 세계가 있다면 할아버진 어떤 세계 속에서 살고 계실지, 어떤 인연들을 만나셨을지 걱정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늘 산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려 들지만, 산 사람들도 종종 죽은 사람들의 삶을 걱정한다. 그리고 더러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세계가 서로 침투하면서 그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현생의 인연이 소멸되는 것을 견딜 수 없다. 시인 고정희의 무덤가에서 소녀들이 흰 나비를 찾았던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뜬 것에 위로를 받은 것도 죽은 사람의 자리를 확인하고 싶었던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무현이 살아있을 때 지지했었냐?"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죽음을 애도할 자격을 논하는 말들을 듣는다. 생전에 그를 욕하던 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죽음을 슬퍼하냐는 말 같은 것은 그만 듣고 싶다. 노빠였던, 아니였든, 정치인 노무현 지지자였든, 대통령 노무현 지지자였든, 그의 정치적 행보에 따라, 그의 자리에 따라 저마다와 가지고 있는 입장과 거리가 달랐다. 지금은 그 지지와 비판의 실 모두를 부여잡고 그의 죽음과 나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 사이에서 흐느끼고 있다. 그의 죽음을 사유화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나의 일부가 함께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나의 한 조각, 그 움푹 패인 자리를 보며 29일 시청 광장에서 "살아야 한다, 정치해야 한다, 이민가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 패인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정치가 썩었다고 등을 돌리지 마라"던 그의 말이 생각이 난다.
“대통령 선거 결과 대한민국은 하향평준화되었다. 월드컵 4강은 아무나 우승할 수 있다,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키웠다. 자기 수준의 대통령을 뽑음으로써 자기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자위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선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일보, 2003년 6월20일치 칼럼)
20대를 지나며 몇 번의 촛불을 경험했다. 20대의 촛불은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한계를 단계적으로 보여준 경험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고 느끼지만 '어떻게'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대안이 그렇게 빠르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지금은 좀 울고 욕하며 있어도 되지 않을까. 세상에 넘쳐나는 말 중에 '20대', '청춘'의 '뜨거움'은 자기계발서의 악세사리로 전락했다. '뜨거움'이나 '열정'같은 말은 혼자서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데 자신을 채찍질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과 공유하는 세상을 조직하는데 사용해야 할 말이다. 누구와 함께, 무엇을 위해서 뜨거울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이 없다면 그렇게 혼자 재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 촛불이 언제까지 가겠냐고, 또 금새 식지 않겠냐고 하지만, 나는 2008년의 촛불이 식은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때도 지금도 나는 나이브하다. 대안을 디자인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고 변명한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와 정치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서경식이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에서 언급한 루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희망을 보고 걷는 것이 아니다.(서경식)
언젠가 상대방이 "Do you see any hope?"라고 물었어요. 저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hope'라는 말로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무엇을 묻고 있는지, 'hope'의 말의 뜻이 무엇인지..... (중략) 그런데 희망이 'hope'일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희망의 희希자가 희박하다는 '희'자이지요. 'little',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절망切望은 전혀 없다는 것이죠. 끊어버렸다는 것이 절망이고, 소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 희망이에요. '우리의 언어에는 희망이 거의 없는 것하고 절대 없는 것, 이 두가지밖에 없다.' 쓸데없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는 글쟁이니까 항상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희망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지요. '희망이란 건, 'hope'라는 건 'I see little hope.' 거의 안 보인다. 그래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식의 표현이 루쉰에 많이 나옵니다. (163)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본래부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 말이지, 길이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다.
'고향' 마지막 부분이지요? 이 말은 제가 아주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는 말인데요. 이 얘기가 결코 희망적인 것이 아니에요. 그것이 중요해요. 일본에 가카무라 고타로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의 시 '도정'가운데 "내 앞에 길은 없다. 길은 내 뒤에 생겨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시를 일본 중학교에서 가르칩니다. 루쉰의 그것하고 비슷하다고 해서요. 그런데 전혀 달라요. 루쉰 얘기는 '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면 된다.'는 어떤 희망적인 이야기가 다카무라 고타로식이고, 루쉰의 것은 '희망, 소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없다. 그래도 걸어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에요. 이것이 '희망'이라는 겁니다. 다카무라의 시하고 루쉰의 시가 아주 비슷한 듯 보이지만 왜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를까요? (174)
수업을 듣는 중에 어느 선생님이 "지난 번에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하루 종일 엉엉 울었어."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해가 간다. 나도 가끔 할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다. 앞으로는 목숨을 던져서라도 자신의 책임을 지고 싶어했던, 신념을 전달하고 싶었던 대통령이자 정치인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을 속상한 마음으로 생각하게 될 것 같다.
9개월 전에 맡긴 필름을 찾으러 간 김에, 9개월 동안 카메라에 들어 있던 필름도 꺼내 스캔을 했고, 내친 김에 카메라 먼지 청소도 했다. 카메라로 본 광경이 이렇게 깨끗할 줄이야!
이 필름의 첫 컷, 2008년 8월 레에서 밤하늘을 찍은 것인데, 필름에 왜 이리 얼룩이 있는 것이냐?
델리에서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 반대 Free Tibet 시위에서 바닥에 PEACE, FREE TIBET이라는 모양으로 초를 놓고 있는 장면을 찍은 것 같은데, 여러가지로 얼룩이 많은데... 음.
지난 2월, 아마도 우도에서 "지구의 배를 눈으로 쓰다듬는 기분이야"라면서 찍은 사진 같은데, 끙. 흑백필름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고 바다를 왕창 찍었네. 그런데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한강의 <검은 사슴>이란 소설이 생각난다. 그 앞 부분에 흑백으로 바다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그 모호함이 좋다고. 그 사람의 집 벽에는 그런 바다/하늘 사진이 흑백으로 가득했다고.
묵은 필름을 찾아오고, 카메라 청소를 마쳤더니 빚을 갚은 듯 후련하다.
남쪽으로 가는 기차의 식당칸에서 내다본 풍경은 (점점 더) 비슷한 공사판이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조금씩 다른 점이 있다면 꽃의 색과 종류와 양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 그리고 도착한 경주에는 벚꽃망울이 벌어지고 있었다.
봄이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특히 밤에) 꽃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 경주에서 찍은 이 하얀 꽃은 (매화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꽃 술이 더듬이 같아서 보기만 해도 간질간질하고 징글징글하다. 슬슬 꽃놀이를 준비해야 할 땐가? 맑은 술을 따라 마실 예쁜 술병과 술잔을 가지고 싶다.
일기예보에서는 밤부터 천둥번개가 치고 딱 아침까지 많은 비가 내리겠습니다아-라고 했는데, 일기예보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2시간 반을 달려간 동두천의 떡갈비는 노릇노릇 고소했고, 갈비탕도 합격점이지만 역시 젖은 고기보다는 구운 고기가 좋다. 메밀국수도 그것만 먹었을 때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떡갈비와 함께 먹기엔 가스오부시 육수가 영 맥을 못춰서 국수가 밍밍하고 퍼석한 메밀 맛만 느껴진다. 가끔 '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떠오르는 가게 중 하나일 듯!
동방신기는 '사이좋은 다섯 남자'라는 타이틀을 늘 달고 다니는데, 보아는 어떨까? 뮤직 스테이션에 나온 보아의 얼굴은 다크서클이 콧망울까지 내려온,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말할 때도 딱히 무섭게 컨셉을 잡은 것도 아니고, 제 무게만한 피곤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 해 연말 음악 시상식에 나온 보아가 말하는 것을 보고 많이들 미국 진출한다더니 말하는 것도 미국 사람 다 되었다는 둥 뒷말이 많았는데, 진통제를 맞고 무대에 서서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여튼, 그 까맣게 피로에 탄 얼굴을 하고 무대에 선 보아가 선 뵌 노래가 <영원>.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이 절로 생각나는 무대. Eat you up부터 최근 동영상을 닥는 대로 찾아서 보고 있다. 그렇지만 보아를 볼 때 '멋있다~' 다음에 드는 생각이 '참 독하다/할 것 같다'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네.
본공연 시작 전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관객들을 위해 서비스로 노래하던 밴드도, 자기 음반을 낸 세션도, 형 따라 서울 놀러온 동생도 한 무대씩 갖게 만들어 준 이 팀의 놀라운 태도. 사람이 무척 많았지만, 작고 사랑스럽고 익살스런 공연이었다. 우리 사이의 압도적으로 먼 거리가 소리로 꾹꾹 눌러담겨져 있었으니까.
그제 학교 건물을 나가는 길에 본 휘엉청 보름달! 알고 보니 그날 올 해 중 달이 가장 크고, 가깝게 보이는 날이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새벽 1시 37분이. 연구실 창문 밖으로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보름달이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어제 종로는, 연말인데도 반짝이는 것도, 종소리도 없이 겨울 황사 바람만 풀풀 날리니 더욱 코가 매큰하더라.
그리고 이상한 꿈
한동안 키세루 주간이었는지 공중캠프에 가면 키세루 CD를 몇 번이고 돌리고 또 돌리고, 끝까지 듣고는 '아~ 좋다. 한번 더!'...는 과장이지만 하루에 1번 이상 CD를 돌려 들었던 것은 확실하다. CD로 들을 때는 여린(조금 느끼한) 미성의 청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라이브는 기대 이상의 힘과 울림이 있었다. 노래와 연주의 모든 울림이 벽의 작은 틈새까지 두드렸다. 바이올린 활 같은 것으로 톱을 간지럽혀 우주의 소리를 낼 때, 보컬도 안드로메다 은하의 우주선에서 보내는 신호처럼 가늘고 예쁜 떨림을 만들어 서로 더듬어 만나는 것 같은 연주 궁합이었다. 다들 떨리는 심장을 잡고 탄성을 뱉으며 공연을 본 것 같다. 그 길로 나는 뻗어서 토요일 5주년 공연은 보러가지 못했다. '그녀의 개가 죽었다', '내일은 비가 온다', '창문에 걸려있는 파란하늘' 이런 가사가 있던 노래가 다시 듣고 싶다. ♥_♥
덧.
옛날에 적어놓은 글을 보다가 발견. amiina의 seoul이라는 노래에도 톱 연주가 사용된다.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식당 앞 목련 나무의 잎에 햇살에 비치어 책에 꽂아놓고 말려놓은 바삭바삭한 잎사귀처럼 잎맥이 선명했다. 오늘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볕을 쬐고 있으면 이마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뜨뜻해진다. 오늘은 해바라기 노릇을 좀 해야지. 기분 따뜻하다.
2008년은 건망증에 걸리기 딱 좋은 해이다. 올해 경험한 중요한 사건들이 서로 연관성이 없이, 하나의 미드를 끝내고 다른 미드로 넘어가듯이 그렇게 무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을 축제의 장소와 동시에 공권력의 폭력이 횡행하는 장소로 경험했고, 그것이 이렇게 3개월이나 갈지도 몰랐고, 동시에 어떻게 되어갈지 막막한 와중에 인도 여행을 갔다. 달라이라마를 만났고, Free Tibet 운동을 하는 청년들을 만났고, 인도에서 촛불집회에 나갔다. 델리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한국 '뒷따마'를 깠고, 친구를 만나러 중국에 갔다가 올림픽에 환호하고 있는 거리의 중국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됐다. 안재환이 죽었고, 최진실이 죽었다. 만나본 적이 없는 한사람 건너의 사람들이 자살을 했고, 주변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장례식에 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인도의 북쪽 라다크의 '레'의 게스트하우스의 '소남'이 아침마다 마당에서 갓 딴 민트로 끓여준 차가 생각이 났고, 그 차를 마시면서 '오늘은 뭘할까?' 생각하며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깨우던 시간이 생각이 났다. '틱세곰파'에 갔을 때 쨍한 히말라야의 햇살 아래 드러난 거칠고 마른 땅의 그림자들이 생각이 났다. 이전까지는 불교와 달라이 라마 등을 생각하면 마음의 행복, 평정심을 어떻게 유지할까, 그런 것만 생각했는데, 그래서 더더욱 나에게 귀찮은 것, 상처주는 것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지키는 식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여행 후에는 히말라야의 햇살과 바람아래 퍼석퍼석하게 드러난 땅처럼 세상과 나의 외부와 피하지 않고 만나자,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것과 대면하자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서울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마음은 조급하다.
한국 불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달라이 라마는 부처님을 믿고 바라는 것이 불교가 아니라,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이 수행되어야 불자라고 여러번 강조했다.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티벳의 스님들이 큰소리로 손바닥을 치며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며(드라마 드래곤 사쿠라에서 아이들이 수학을 배울 때 탁구하는 자세로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끊임없이 나와 세상에 대해서 존재론적인 성찰을 하고, 이치를 깨달아 가는 오랜 배움의 시간이 생각이 났다. 티벳 불교에는 위 사진에서와 같이 오랜 말씀들이 'library'에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고, 그 경전들과 대화를 하며 수행하는 '나'들이 있다. 달라이라마 일행이 1956년에 라싸에서 인도로 망명을 올 때에도 경전들을 산더미처럼 짊어지고 왔다고 한다. 한 한국 스님 말씀이 달라이라마가 티칭을 하실 때 몰려든 수백명의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데, 바로 그 식당에 그 경전들이 쌓여 있더라고 했다. 그것은 그들이 경전을 가치없게 여긴다거나, 보관하는 시스템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경전을 보존하고 모셔놓아야 할 것이라기 보다 현재에 수없이 열어서 읽고 대화해야 하는 이야기들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 학기 중간을 넘어 기말이 다가오면서 책을 읽는 것이 짜증이 치밀 때가 있다. 대합실에서 재미없고 관심없는 TV를 채널을 선택할 수 없어 꾸역꾸역 봐야 하는 느낌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책들을 만나기 위해 어떤 여행 왔는지, 어떻게 마련한 소중한 시간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만나고 싶어 찾아온 친구들이다.
맥그로드 간즈에서 델리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산을 굽이 굽이 넘어 비틀비틀 내려온다.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멀리 맥그로드 간즈가 보인다. 제일 오른 쪽에 있는 것이 메인 템플 '남걀사원'. 어린이 보고 싶다.
덧. 오늘 문득 달라이 라마 티칭이 생각이 나서 법회가 끝나고 한국에서 온 단체 여행객 틈에 끼어서 찍은 사진을 검색해봤는데 구글 검색으로는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올려준다고 했는데 여행사 이름이 생각나지도 않았고... 그런데 한 네이버 블로그에 사진이 올라와 있어서 깜놀! 어찌된 일인지 여행을 같이 갔던 막내 동생도 오늘 네이버에서 '달라이 티칭'이라고 검색해보았다는데, 우리 둘이 텔레파시가 통했나?! 아, 너무 기쁘다. 내 바로 아래 황토색 옷을 입은 '어린'의 모습도 보인다.
퍼뜩 인도에서 찍은 사진 중에 저 맥그로드 간즈를 떠나오는 길에 찍은 필름을 현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질녘에 몇 컷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통 어디에 갔는지...? 집에 가자마자 필름부터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필름나라에 맡기고 3달이나 잊고 있었던 필름 3통도 어서 찾아야지.(죄송합니다.)
가좌 뉴타운 철거가 한창이다. 가좌 뉴타운이 약 4구역까지 있는 것 같은데, 남가좌동 지역인 1구역은 벌써 개발 막바지라 아파트에 유리창을 달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깨찰빵'을 처음으로 팔기 시작해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식감의 충격을 주었던 '뉴욕 베이커리'에 대문짝 만하게 뻘건 글씨로 '철거'라고 도장 찍혔을 때 얼마나 상실감이 들던지. 매일 친구들이 전학을 떠나가는 교실에 쓸쓸히 박혀있는 기분이었다.
우리집은 지난 6월에 이사했다. 구역의 한 가운데부터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하더니, 집을 골격만 남기고 다 뜯어내버려 동네가 을씨년스러워질 무렵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엄마가 재빨리 일주일 사이에 집을 구해서 이사를 결정해 행동으로 옮겼다. 상점들이 보상금을 놓고 협상을 하다가 몇번인가 결렬되었다고 하더니, 도로 주변의 상점들에 '단결투쟁'이라는 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꽤 늦게까지 남아있던 '안젤리카 빵집'이 14일까지 영업을 하고 15일인가 이사를 간다고 한다. 빵집 바로 오른편에 예전 우리 집이 있어서 우리집 1층의 창고를 빵집이 쓰고 있었기에 우리 엄마와 빵집 주인 아주머니와는 서로 시골에서 가져온 야채와 빵을 교환하며 정을 쌓아온 관계였다. 안젤리카 빵집의 호두가 박혀있고 단팥과 초코를 믹스해 속을 채워 넣은 페스츄리는 꽤 맛이 있었는데. 얌얌.
태어나던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제일 문방구는 이사한지 오래다. 북가좌 초등학교 근처 육교 아래로 이사한 것을 지나가다 보았다.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금슬이 좋아서 이른 아침이면 아저씨가 예나 지금이나 까만 화물 자전거로 아주머니를 뒤에 태우고 와 가게 문을 함께 열고, 저녁 9시가 되면 또 항상 나타나 아주머니를 뒤에 싣고 또 집으로 차르륵 차르륵 가곤 했다.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은 8시대의 드라마와 9시 뉴스가 시작하는 그 사이쯔음이었던 것 같다. 제일 문방구 가게 안은 내 꿈의 단골 장소이다. 바닥부터 선반까지 사방에 노트와 프라모델이 총총히 박혀있는 그 작은 골방에선 못 구하는 물건이 없었다. 내 꿈에선 이 문방구가 되게 오래된 장인들이 재봉틀 소리에 맞춰 색색 공으로 저글링을 한다거나 비단을 찍어 낸다거나, 종이학을 접어 까만 밤에 강물에 총총히 흘러 보낸다거나, 그런 마술적인 공간으로 등장하곤 했다. 그곳의 지휘자는 언제나 그 사이좋은 주인 부부였다.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보니,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던 '샤론 꽃집'에서 불이 났다. 2차선 도로에 소방차가 즐비했다. 다행히 큰 불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2층엔 작은 여관이 있고, 워낙 작은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로 총총히 붙어있는 곳이라 불이 번졌다 하면 꽤 큰 사고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예쁜 꽃도 없고, 특별히 '플로리스트'라고 할만큼 트렌디한 꽃다발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스승의 날이나, 부모님 생일에 사갈만한 카네이션과 장미꽃이 있고, 어느 집이나 방문에 걸어놓음직한 'Welcome'이라 적힌 작은 칠판이 달린 포프리를 팔던 곳. 이주해 나가고 철거를 마친 집이었지만 사람이 떠나간 집일 수록 '왜 불이 난 걸까?'에 대해 오만가지 상상이 든다. 재개발 조합에 이주를 신청하면 이주 날짜에 이사를 떠나고 나면 바로 사람들이 와서 수도와 전기, 가스를 끊고 창문을 다 뜯어낸다. 집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 수 없도록. 그런데 가스와 전기가 끊긴 이 집에서 왜 불이 났을까? 커다란 창문이 없던 조그만 3평짜리 가게를 바람막이 삼아 담배를 피우고 컵라면을 먹으면서 살던 어떤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남가좌동에 2년만에 센트레빌이 솟아올랐듯이 이곳도 2년 안에 래미안이나 아이파크같은 것이 생겨나겠지. 도대체 이런 재개발은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도대체 그 이익은 누구에게 가는 걸까? 막, 화딱지가 난다.
갑자기 쌀쌀해졌다.
교문을 들어서면 <뉴욕의 가을>에 나왔던 센트럴파크 마냥
빨갛고 노란 단풍이 가득하다.
모과도 샛노랗게 물이 들었고.
어디선가 주어 들은 말 중에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과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는 것은
인간이 아이를 낳는 것만큼의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사람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래서인가...
눈도 흐릿하고 덩달아 세상이 나른해 보인다.
"내가 뭐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콩나물국을 끓인다.
태어날 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모퉁이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이선언니. 실은 고모할머니의 딸이라 5촌 아줌마 관계이다. 그러던 언니가 지난 주말 결혼을 했다. 주말에 TV에서 이미 다 본/관심없는 드라마나 쇼프로 재방송을 해주고 있을 때 모퉁이에 있던 할머니 떡볶이 집을 들러 뜨거운 떡볶이 비닐 봉지를 들고 달려가곤 했던 거리에 살던 언니가 이제 양평에 산단다. 명절이면 자기 집 차례를 지내고 나서 손님이 바글바글한 우리집에 놀러와서 낮잠자고 가곤 했던 언니를, 앞으론 명절 당일에 만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자기 신랑을 '곰탱이같이 생겼다'고 소개했었는데, 결혼식장에서 입이 귀에 걸린 신랑을 보니 앞으로 둘이 사랑하며, 사랑 받으며 살겠구나라고 맘으로 점을 쳐본다.
(지금 피지는 화창하겠지? 아~ 남국의 바다에서 물놀이 하고 싶다아~)
(어쩜. 드레스 좀 봐. 치맛단에 레이스가 겹겹이 있는 것이 언니가 고른 드레스답다.)
항상 가까이 살아서 서로 책과 옷을 빌려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양평에 멋진 책장을 만들라구! 내 서울 밖으로의 첫 드라이브는 아마도 양평이 되지 않을까?
지효는 선물로 준 이 목걸이를 하고 다니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실은 이 목걸이는 올해 늦여름에 티셔츠에 아주 즐겨 매고 다니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하얀 알이 툭 떨어지고 말았다. 다른 알들이 촘촘이 달려 있어서 손가락으로는 어디 비집고 떨어진 알을 다시 매어놓을 틈바구니를 찾을 수가 없는 대략 난감한 상황. 뭉툭한 엄지손가락같이 생긴 뺀지가 아니라 핀셋같이 날렵한 뺀찌가 필요하다. 잉잉. 그치만 4:2의 비율도 괜찮은 것 같아.
요즘 대낮의 가을 햇살이 어찌나 강한지, 오전에 시한폭탄같은 숙제를 부리나케 할라치면 어느새 이마와 팔이 익고 만다. 영어 텍스트라도 읽어야 하는 괴로운 상황이면 저도 모르게 눈이 글자보다는 저 물고기 그림자를 쫒아가고 있다니까.
그제 밤 12시쯤 아빠는 초등학교 동창의 부음을 들었다. 방문 밖으로 전화를 끊은 아빠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꾹꾹 눌러 콧물 한방에 후루룩 삼켜버리는 그런 소리였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셨다는 감악산에 유해를 뿌리고 거나하게 취해 돌아온 아빠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3번이냐? 나 1번이다!" 술이 분해되어가는 생물체 그 자체인 아빠에게서 냄새가 풀풀 풍겨져 나왔다. 1번이었던 사람에게서.
연휴를 앞두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의 기분, 아니 할 일이 '많은 것 같은' 사람의 기분에 잠겨서 푹 한숨을 쉬던게 딱 일 주일 전. 연휴가 끝나고 이자가 붙은 할 일들에 또 한 숨을 쉬던 것이 지난 화요일. 막상 리스트를 정리해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내가 소머즈같은 속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두기같은 머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아무리 반올림해서 셈해봤자 고작 평범한 인간 능력으로 밀려있는 갖은 일들을 노려보고 분통을 터뜨린다. 아니다. '분노'다.
'분노'라는 감정과 얼굴을 맞대본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동안 이 놈을 '서러움'이나, '짜증'같은 놈들로 오해했었다. 요즘의 감정은 말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심장이 뛰면서 사지의 힘이 빠진다.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다. 분노의 한 켠에 무기력함과 인간이 이렇게 나약할 수가!라는 허무함이 함께 있다. 오래된 사건들이 걷잡을 수 없이 거미줄을 치고 있다. 그런 한가운데 있는 내 인생 자체에 대한 '분노'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지 돈을 내고 티비나 접시, 살림살이를 부시는 사업이 있었던 이유를 알겠다. 나는 야구연습장에 가고 싶다. 빵! 빵! 후덜거리는 다리에 힘을 빡 주고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노려본다.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그 공에 쓰인 글자까지 볼 수 있겠느냐마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 자신을 노려본다. 그리고 뻥 찬다.
개강과 함께 텍스트의 홍수가 시작되었다. 색연필을 들고 글자를 노려보는데 도통 대화가 안되는 놈들이다. 아니, 내가 듣지를 못하는 놈이겠지. 한숨에 먼지만 풀럭거린다. 그 책상 한켠에 쌓여있는 [그곳에 천국이 있을까? 1, 2] 도서관에 남아있던 유일한 코맥 매카시의 책이었다. 최근에 [모두 다 예쁜 말들]이라고 다시 번역되어 나온 all the pretty horses. 이번 주말에는 읽을 수 있을까?
추석 전날 잃어버린 지갑 관련해서 오늘 서대문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갑을 잃어버리신 것 같은데, 지갑은 없고 안에 들었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학생증, 신용카드, 법인카드, 그리고 카드 영수증들이 우체통에 들어있어서 경찰의 임무로 그것을 북가좌 1동 주소지로 보냈었는데 반송되어 영수증에 적힌 번호를 보고 전화한다...그런 내용이었다. 지갑까지 홀랑 가져가다니. 젠장! 지갑 안에 전화번호가 적힌 영수증이 하나 있어 은근히 돌아오기를 기대했었는데. 현금과 수표, 지갑. 모두 잘 가라!
추석 당일 밤에 자다가 새벽 3시 반에 눈을 떴는데, 누운 자리 그대로 저 창 모서리에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가위에 눌린 듯 꼼짝도 못하고 다시 잠이 들 때까지 달을 봤다.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가위에 눌렸으니까-생각도 안났다. 그렇게 창 밖으로 사라지는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올 봄에 읽은 책 중에 오카모토 카노코의 [초밥]이라는 것이 있다. 도서관 책장 사이를 지나다가 발견한 책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나쓰메 소세키의 [길 위의 생]이 펼쳐놓은 3-40년대 도쿄 우에노에 [초밥]이 식당을 조근조근 채워주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제국의 망령에 한창 사로잡혀 있던 시기의 도쿄에서 조용히 몰락해 가는 서생이나 (전통) 금속 공예사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길 위의 생]도 영국 유학씩이나 다녀오고도 옷이나 세간을 내다 팔아야 겨우 밥 한술 먹었던 시절의 나쓰메 소세키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음울하고, 불길하지만 그래서 환상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들이다. 만화 식탐정 1권을 보는데 오카모토 카노코의 [초밥]에 실려있던 <집유령>이라는 단편의 대화로 시작하더라. (근데 식탐정 왜이렇게 재미없어?)
"우리들 금속공예가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거는 인간들이지. 내일 일은 생각지 않아. 아가씨가 여주인의 딸이니 저 작은 물고기 대여섯 마리만 베풀어 주게나. 이대로 죽는다 해도 오늘같이 서리가 내리는 밤은 싫구먼. 오늘 밤만은 작은 물고기의 생명을 똑똑 씹어 내 뼛속에 집어 넣고 더 오래 살고 싶어. [집유령] 中 (p. 80)"
어서 집에 가서 계란후라이에 깻잎간장절임을 얹어 먹어야겠다. 방금 마신 홍차의 탄닌이 위를 긁고 있다. 이럴 때 정말 밥상과 TV 앞으로 공간이동 하고 싶다. ㅠ_ㅜ
p.s. 추석 다음날 밤에 찍은 것.
9월
숨차게 걸으면 40분.
일년에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가끔 한강에 걸어서 다녀온다.
가양대교 너머로 지는 노을을 보면서
쿵쾅거리는 심장에 맥주 한캔을 붓는다.
그리고는 헤롱헤롱 집으로 걸어온다.
여행에 다녀오고는 외롭지 않았다.
여행에서의 마음과 태도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단순하게 결정하고 움직이는 일상이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어난다.
잠시 문 밖에 나가 서성인다.
씻는다.
배가 고프다.
밥을 먹으러 간다.
인사를 한다.
안부와 소식을 전한다.
걷는다.
이런 근심없는 하루의 패턴이 아직 습관으로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그제 밤, 엑스노트의 광고 시리즈를 보고 난 후
도시의 여름, 밑도 끝도 없는 막막한 느낌이 또아리를 틀었다.
외로움의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질문도 할 수 없는 그 뻥 뚫린 도시의 감정.
그래서 이덕무의 책 속으로 잠시 피신한다.
사립문을 열고 나가면 별과 이웃이 있는
민속촌같은 1700년대의 도성으로.
비가 눈처럼 내린다.
설날 아침에 급한 엄마 심부름으로 평소엔 몇백원 비싸서 잘 가지 않던 집 앞 슈퍼에 잠옷 바람에 슬리퍼만 끌고 간장이나 계란같은 것을 사러 뛰어갈 때, 그 때의 살에 척 달라붙는 쌀쌀함이 느껴진다. 바람이 '이때다!'하고 달라붙는 것 같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만난 인연이 곧 있으면 10년째 된다. 이 아이들과 여행을 함께 간 것은 처음이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엄마도 있고, 직장생활 4-5년차가 된 애도 있고, 3년간 정들인 논문을 끝낸 아이도 있고, 곧 직장을 그만두고 멀리 날아가는 아이도 있다. 오래 만나왔지만 며칠씩 붙어 있어 본 것은 처음이라, 서로에게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곤 놀랍고 신기했다.
그 여행의 첫날 밤, 옌타이 바닷가에 가니 노천 술집에서 차려둔 길거리 노래방에서 중국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안재욱이 '친구'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부른 노래도 들리고, 등려군의 '첨밀밀'도 들려왔다.
그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풍등을 날리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 두개가 아니었다. 음력 7월 15일, 보름달이 휘엉청 뜬 밤 하늘로 사람들은 수 많은 풍등을 날려 보냈다. 우리도 여행 마지막 날에 소원을 적어 풍등을 날리자고 약속했는데, 무섭게 비가 내렸다. (OTL)
길고 지루하지만 동영상을 끝까지 보면 풍등이 바람에 날려 보름달 속으로 쏙 들어가는 걸 볼 수 있다. :p 이 소원의 말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바람이 그치는 곳에서 다시 내려와 앉을까?
마지막 밤. 동이 트기 직전에 아이들이 잠이 들었다. 까맣던 하늘이 어스름해질 무렵에 방의 불을 끄고 내경과 바다쪽 창으로 자리를 옮겨 마지막 남은 와인을 열었다.
멀리, 등대가 보였다.
멀리 있는 친구의 안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모난 성격으로도 서로 맞물리는 방법을 알 수 있어서, 따뜻했다.
옌타이 야시장에서 15위안에 산 이 물건. 앞에 붙은 태양열 전지같은 것에 빛이 들어가면 고개를 까닥까닥 한다. 친구 2명과 함께 구입하며 값을 깎았는데 내 것만 불량인지 여행 중엔 영 시원찮게 움직였다. '뚸~ 샤오치엔?'(맞는지는 모름)이라고 어색하게 물으니까 아저씨가 물건값을 30%는 더 붙여서 불렀었는데, 지혜가 쏼라쏼라 얘기해서 깎아준 물건이다. 고개를 '흔들흔들'하는 것이 이래도 '응~' 저래도 '응~'하는 것 같아서 오래도록 책상 위에 놓고 싶었다. (꺅!) 집에 와서 스탠드 밑에 놓아두니 이렇게 잘 움직인다. (만세!)
올해 EBS 일본어 회화 첫번째 Topic이 かものはしかも(오리너구리일지도 몰라)였는데, 이 캐릭터가 바로 이 고개를 흔드는 상품들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찾아보니 '카모노하시카모'는 정말 머리에 물음표를 단 오리너구리네? 이 캐릭터는 '오리너구리인 것 같기는 한데 오리너구리가 아닐지도 몰라', 자신이 오리너구리인지 아닌지 잘 몰라~라는 상태 캐릭터라고. 사진을 보니 정말 마음에 든다. 오리너구리이든 말든, 기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라는 넋나간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
2.
지난 번에 인도에 갈 때 공항 면세점에서 침만 바르고 돌아섰던 레고 시계! 루크 스카이워커 캐릭터의 레고 인형을 시계에 부착할 수 있다. (으하핫!)
3.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 가사가 자꾸 생각나서 mp3 찾기를 포기하고 유투브를 검색했는데, 이 뮤직비디오... 노래를 듣기만 하며 만들었던 곡의 이미지와 느낌과 너무 달라 화들짝 놀랐다. 뮤직비디오를 안 만들었어도 좋았을텐데. 난 아프리카의 공주, 14살 소녀, 하루 1달러에... 이런 가사에 마이크에 바짝 댄 입을 클로즈업하는 것은 좀 -_- 난 비 그친 늦은 밤, 불꺼진 상점가를 지나 집으로 가는 야근한 노동자의 발길을 생각했었는데.
4.
엄마가 자다가 어떤 꿈을 꾸시는지 반쯤 뒤집어진 목소리로 꺄르륵 웃는다. 꿈 속에서 누군가 숨넘어가게 웃긴 이야기를 해주었나보다.
많이 걸으면서 행복하게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3주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지나갔습니다.
감동적이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조계사로부터 스님들과 보살님들이 3D촛불소녀를 앞세우고,
관세음보살(?) 등을 뒤에 세우고 시청으로 왔다.
엄청난 인파였다.
주머니에 떡과 물을 든 보살님들이 한가득이었다.
스물네 번째 절을 올립니다."
"합법적인 방법이어도 남의 몫을 남겨주지 않는 탐욕이야말로 도둑질임을 작가하지 못한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다섯 번째 절을 올립니다."
"몸의 즐거움에 탐착하여 술에 빠지고 감내해야 할 의무를 피하여 술잔 속에 숨어버린 허물을 참회하며
스물여덟번째 절을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