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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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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뒤 우리는 기차의 내부로 들어간다. 노리코가 혼자 앉아서 멍하니 차창 밖을 쳐다본다. 그녀의 마음은 딴 데 가 있다. 잠시 뒤 그녀는 무릎 위에 있던 시어머니의 시계를 집어 든다. 그녀가 뚜껑을 열자 갑자기 초침이 째깍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노리코는 시계를 들여다 본다. 그녀의 얼굴은 슬프면서도 명상적이다. 손바닥에 놓인 시계를 들여다보는 우리는 이제 시간 그 자체를 들여다 보고 있다고 느낀다. 기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시간은 앞으로 진행하면서 우리를 인생, 더 많은 인생쪽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나 시간은 과거이기도 하다. 죽은 시어머니의 과거, 노리코의 과거, 현재 속에 깃들어 있는 과거, 우리가 안고 미래까지 가지고 가야 할 과거.
 기차의 경적 소리가 우리의 귀에 크게 울려 퍼진다. 귀청을 찢어 놓는 커다란 소리, 인생은 실망스러워요, 그렇지 않아요?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이어 장면은 갑자기 끝난다.

 폴 오스터, 어둠 속의 남자, 108-109

 이 책에서 '책 전체의 이야기'로부터 잠시 양지바른 곳으로 소풍 나온 것 같은 부분이었다.


2008/10/07 12:49

1.

[더 걸]이 1990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많이들 알고 있었나?  2006-7년 쯤에 좀 오래된 색을 입혀 만든 영화인 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검색해보곤 깜짝 놀랐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1990년은 별로 오래되지 않은 과거였는데, 요즘 나에게 1990년은 굉장히 먼 옛날로 느껴진다. 초등학교 3-4학년이었을 그 때가.

"당신은 39-45년에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 이후에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쏘냐는 남다른 정의감이 있는 아이지요."
"쏘냐는 지금 왜 이런 겁니까?"
"그러면 남들은 도대체 왜 이렇습니까?"


영화는 한 편으로 굉장히 연극적이어서, 화면 속의 한 장면이 갑자기 연극 무대 변하듯 확장되기도 이동하기도 한다. 이런 장면의 기술들이 영화의 내용과 굉장히 좋은 궁합을 이룬다. 긴박한 연극이 그렇듯, 특히 쏘냐가 필딩 마을의 친나찌 행적과 은폐를 추적하기 시작할 때에 조각보를 짜깁은 것 같은 장면들의 솜씨좋은 바느질은 연구나 취재, 글쓰기에서 이야기들을 엇붙이고, 확장하는 그 실제 과정이 느껴지게 한다. 그런데, 통일 전 서독과 남한은 어찌 이렇게 비슷한지. 과거의 역사가 분단으로 공구리쳐지면서 과거라는 비밀 폴더에 접근할 때 '빨갱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이렌을 울려버리는 것까지. 홀로코스트의 시간에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가 못지 않게, 그 이후에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당연하게 현재에는 너무도 중요하다.


2.
약 2주된 꿈 이야기. 전후의 과정은 다 잊혀졌지만 그 중요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꿈 속에서 불광천 비슷하지만 훨씬 더 깨끗하고 반딧불이 살 것 같은 개울가에 갔는데, 아마도 거머리 비슷한 것에 어깨를 물린 것 같았다. 통통한 검은 지렁이같은 것을 떼어서 수풀 속에 던졌는데, 어떤 어르신이 달려오더니 내 손목을 잡고 양손으로 여드름을 짜듯이 꾹꾹 누르는 것이다. 이건 X-files도 아니고, 손목에서 가늘고 긴 검은 실뱀이(더러는 피를 쪽쪽 빨아서 통통해진) 줄줄이 나오는 거다! 나오다가 중간에 끊어지면 다시 그 끝을 찾아서 뽑아내고... 그 밤 꿈 속에서 약 스무마리의 실뱀이 손 목에서 뽑아져 나온 것 같다. 징그럽지도, 소름끼치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신기하고, 시원했다. 아, 그 피먹고 통통해진 실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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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활자를 읽는 것이 이렇게 스트레스가 된 적이 없었다. 한 수업을 준비하며 영어 텍스트 한 두개와 한글 텍스트 서너개를 읽고 쪽글을 쓰는데, 그간 영어뿐만 아니라 공부 자체를 설렁설렁 했었던 탓에 기본적인 개념들이 머릿 속에 제대로 된 집을 짓고 있지 못했다. 거기에 한글과 영어가 만나니까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이라는 짝짓기자 잘 안되는 거다. 기본적인 사전조차 만들지 못했는데, 여기에 practice를 행동, 실천 등으로 3-4개의 한글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으면 나는 이 단어들을 주어 한 바구니에 담을 생각도 못하고 어이를 놓아버리고 만다. 한 밤 중에 머리를 책상에 박고 책 위에다 '분신사바'하듯 연필만 죽죽 그을 뿐. 아, 정말... 언어들에 집을 지어주는 사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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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4 23:19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막 함께 여행을 다니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고 싶다는 지현이의 말 한마디로 떠난 익산. 호남선은 KTX의 속도와 요금이 무색하게 대전 이후로는 '무궁화호'의 속도에 발 맞추어 가는 정도라, 익산은 무궁화호를 타고 왕복 6시간, 3만원에 다녀올 수 있는 장소다. 서울이 아닌 소도시에서 볼 수 있는 논과 밭이 섞여 있는 낮은 landscape. 굽 높은 부츠를 신고 바위 산을 올라 익산을 내려다 보니 원광대 근처로는 더 샵이나 자이, 래미안 류의 아파트 브랜드들이 쑥쑥 솟아 있다. 규호 말마따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도시 설계를 배우겠다고 공무원들이 쭉쭉 유럽 탐방을 하고, 아파트 건축 허가를 내주는 나라가 바로 여기다.

익산에서 발견한 두가지 보물은 다가포가든의 갈매기살 연탄구이. '전라도'의 갖은 양념이 잔뜩 든 묵은지와 밑반찬도 훌륭하지만, 서비스로 나오는 두부를 뭉개 향과 맛이 너무 진하지 않은 청국장도 두 뚝배기나 뚝딱 비웠고, 갈매기살이 듬뿍든 김치찌개도 대단했다. 거기에 호박을 넣은 맑은 국수까지.


두번째 보물은 '엘베강'이라는 역전의 작은 술집. 떡볶이집에서 주문하듯이 맥주, 쥐포, 오징어, 오징어입, 김 등이 적혀있는 주문서에 몇 개, 몇 개 표시해서 드리면 바로 옆에서 지지직 구워서 내준다. 오래된 쥐포 구이 누린내가 벽에 켜켜이 배어있는 곳. 집 근처에 있다면 매일 혼자 들러서 저녁 일일드라마나 야구 경기를 보며 맥주 두 쪼끼쯤 시원하게 마시도 돌아갈 '참새 방앗간'이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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